1. 케어링 웃음 레슨
수원 권선점
웃음과 따뜻한 순간이 가득한 센터의 이야기를 확인하고, 마음을 두드린 작품에 투표해 주세요.🩷
우리 센터와 새롭게 방문요양 서비스를 계약하신 한 남자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이 어르신은 처음에 주간보호 서비스를 잠시 이용하셨습니다. 배우자분 혼자서는 돌봄이 힘들어, 어르신을 안전하게 맡길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다 주간보호를 선택하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르신께서는 센터 환경에 잘 적응하지 못하시고 결국 이틀 만에 퇴소를 결정하셨습니다. 배우자분 역시 인지가 좋지 않으셔서 두 분의 일상은 늘 불안이 따랐고, 결국 저희는 보다 안정적이고 가정에서 편안하게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방법으로 방문요양 서비스를 권유드렸습니다. 그렇게 지난 7월 4일, 어르신은 정식으로 방문요양 서비스를 계약하시며 다시 우리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서비스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9/15 저녁 무렵 갑작스럽게 어르신의 실종 신고 안내가 센터장 및 사회복지사 선생님의 휴대폰으로 전해졌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고, “혹시 어르신께 무슨 일이 생기면 인지가 약한 배우자분은 어떻게 하실까” 하는 걱정이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어르신의 안전뿐 아니라 남겨질 가족의 불안까지 겹쳐, 마음이 더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센터는 즉시 연락망을 가동했으나 배우자, 자녀까지 부재중이었습니다. 이후 연락이 닿았고 주변을 수소문하며 어르신의 흔적을 찾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 역시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어, 곧바로 센터 주변을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골목길과 익숙한 길들을 부지런히 살피며 “어디 계실까” 하는 마음으로 애타게 둘러보았습니다. 하지만 쉽게 단서를 찾을 수 없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걱정은 더 깊어졌습니다. 그렇게 긴장 속에서 시간이 흐르던 중, 밤 11시 무렵 보호자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어르신을 찾았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순간, 무거운 돌덩이가 내려앉은 듯했던 가슴이 탁 풀리며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습니다. 직접 모시고 오진 못했지만, 어르신이 무사히 가족 곁으로 돌아오셨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벅찼습니다. 이번 일을 통해 느낀 것은, 방문요양이라는 일이 단순히 가정을 찾아가 어르신을 돌보는 일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르신의 삶 전체를 함께 고민하고, 가족의 불안을 나누며, 위기의 순간에도 끝까지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사건이 마무리된 뒤, 저는 보호자분께 산책 시 반드시 동행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당부드렸습니다. 혼자 외출하는 경우가 잦아지면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습관 하나가 어르신의 안전을 지켜줄 수 있음을 안내드렸습니다. 앞으로도 어르신이 안전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실종을 미연에 방지하는 여러 방법을 지속적으로 함께 고민하기로 했습니다. 짧지만 긴박했던 어제의 경험은, 우리 센터가 왜 존재하는지,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르신을 모셔야 하는지를 깊이 새겨준 사건이었습니다. 어르신과 가족에게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든든함을 드리고, 우리에게는 방문요양의 소명이 더 크게 다가온 순간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센터는 어르신 한 분, 한 가정의 곁을 끝까지 지키며, 작은 위기 속에서도 따뜻함과 안도를 드릴 수 있는 방문요양을 이어가겠습니다. 그 길 위에서 만들어질 또 다른 감동의 순간들을 기대하며, 오늘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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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어르신을 뵙게 되었을 때, 그분의 첫 마디는 “그냥 가요” 어르신의 첫 마디는 매우 단호했고, 그분의 마음이 얼마나 닫혀 있는지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말을 건네도 대답을 듣기 어려웠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식사를 잘 드시지 않아 건강 상태가 악화된 상태로 노인성 질환이 없고 정신분열병과 양극성장애로 등급을 4등급을 받으셨으나 현재 건강 상태는 2등급과 같았습니다. 식사를 하지 않아 자녀분들의 걱정이 매우 큰 상태였으며, 무기력증과 대인 기피증이 있어 방문요양 서비스를 신청하시면서도 수급자 어르신이 방문요양서비스를 수용할 수 있을지 매우 어려운 문제였습니다. 기관과 여러 차례 상담을 통해 결론은 어르신에게 도움이 많이 필요한 상황이며 자녀들의 딱한 사정으로 몇 회만이라 방문요양서비스를 해 보자는 마음으로 방문요양서비스를 진행 해 보기로 결정을 하셨습니다. 어르신의 상태를 조금 더 잘 이해하고,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무엇보다는 어르신이 평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서 따뜻하고 경험이 많은 요양선생님을 찾아 여러 번 상담과 조율을 거쳐 매칭하게 되었습니다. 첫 방문 시 여전히 어르신께서는 “세상 귀찮다” 며 돌아 앉으셨지만 저희는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어요. 수급자 어르신의 반응 없어 요양선생님 혼자서 독백을 해 가면서 서비스는 진행됐으며 점심 때 식사를 준비 해 드렸지만 어르신은 치우라며 등을 돌리시며 불편해하는 기색을 보이셨습니다. 우선 식사를 드시게 하는 게 먼저라 생각했고 식사와 함께 기관에서 가지고 간 빵도 드시기 좋게 잘라 밥상에 올려 드리고, 자리를 잠시 비켜 드린 후 다시 어르신이 계시는 방으로 돌아와보니, 빵은 다 드셨고 공기밥도 1/3 정도만 드셨으며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했고, 변화의 시작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래, 한 걸음씩 천천히” 라는 마음으로 작은 걸음씩 계속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 요양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한 장에 저도 모르게 마음 한 켠이 뭉클해졌습니다. 그 사진에는 어르신이 선생님과 함게 빨래를 정리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죠. 어르신이 스스로 작은 일을 집중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귀여웠고, 그 순간 제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이래서 내가 이 일을 하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결국 작은 변화들이 모여 큰 변화를 만들어 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고 한 가지 목표가 생겼습니다. 그건 바로 어르신에게 “ 어서 와” 라는 말을 듣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가 큰 의미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이 어르신의 마음을 조금씩 여는 첫걸음이 될 거라 믿습니다. 앞으로도 매일 조금씩 다가가며, 그 말을 들을 수 있는 날을 손꼽아 기다려봅니다. 어르신의 마음을 여는 과정에서 하루 아침에 큰 변화가 찾아오지는 않겠지만 작은 변화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지는 특별한 경험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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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첫 만남과 목욕 서비스의 시작 재가복지센터에서 근무하며 수많은 상담을 진행하고 많은 어르신들을 만나왔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제 마음에 깊이 남은 한 분이 계십니다. 그 어르신은 파킨슨 증후군이라는, 일반적인 파킨슨과는 조금 다른 어려운 질환을 안고 삶을 살아오고 계셨습니다. 배우자분이 곁을 지키며 돌보고 계셨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혼자 아버님을 씻겨드리는 일이 점점 벅차게 느껴지셨고, 결국 자녀분들이 저희 센터에 상담을 신청하게 되셨습니다. 처음 차량목욕 서비스에 대해 설명드렸을 때, 어르신의 반응은 솔직히 썩 긍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낯선 서비스에 대한 어색함과,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에 대한 마음의 불편함이 묻어나셨지요. 말씀도 많지 않으시고, 다소 고지식한 모습도 보이셨습니다. 파킨슨 증후군으로 인해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말씀이 어눌하게 들렸지만, 그보다는 아직 마음의 문을 열 준비가 되지 않으셨다는 것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조심스레 시작된 차량목욕은 어르신의 삶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2. 첫 목욕 날의 긴장과 변화 첫 목욕 날, 따님과 어머님은 혹시나 어르신께서 불편해하시지는 않을까 걱정이 많으셨습니다. 어르신 역시 긴장과 부끄러움이 뒤섞인 표정을 감추지 못하셨지요. 활력징후를 꼼꼼히 체크한 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따뜻한 농담과 수다 속에서 서서히 굳었던 얼굴이 풀리며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걱정과는 달리, 차량목욕이 시작되자 안에서는 어르신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긴장으로 굳어 있던 얼굴은 어느새 환하게 밝아졌고, 따님과 배우자분도 그 모습을 바라보며 안도의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목욕을 마친 뒤, 가족들은 “아빠, 이제 정말 개운하시겠다”, “오늘은 더 멋있어지셨어요”라며 다정한 말씀을 건네셨습니다. 그 따뜻한 격려와 존엄을 세워주는 말들에, 어르신은 다시 한번 어린아이처럼 환한 웃음을 지어 보이셨습니다. 말씀이 어눌하신 어르신이셨지만, 저와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의 손을 꼭 잡으시며 연신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으셔도, 그 모습 속에서 ‘고맙다’는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것을 깊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돌봄 속에서 피어난 교감 어느새 어르신께서는 차량목욕 서비스에 완벽히 적응하시어, 월 2회에서 월 4회로 이용 횟수를 늘리셨습니다. “매주 수요일이 오는 날이죠? 이제는 기다려져요.” 배우자분도 이렇게 말씀하시며 미소를 지으시곤 합니다. 정기적으로 서비스를 이용하시면서 어르신의 표정과 기분도 눈에 띄게 밝아지고, 하루하루가 한결 가벼워지셨습니다. 어느 날, 따님께 한 통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팀장님, 우리 아빠가 누군가를 기다리며 저렇게 아이처럼 웃는 모습은 처음 봐요. 제가 멀리 살아서 주말에만 찾아뵐 수 있는데,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께서 마치 자식처럼 아빠께 다가가 주시니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 역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작은 변화가 어르신뿐 아니라 가족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따님은 방문요양도 함께 신청하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빠도 좋다고 하시고, 앞으로 더 좋아지실 것 같아요. 이제는 저희 가족에게 선생님들에 대한 완벽한 신뢰가 생겼습니다.” 그 말 속에서, 단순한 서비스가 아닌 진정한 ‘신뢰와 동반자 관계’가 형성되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로 구인을 시작했고, 다음 날 선생님을 모시고 가족분들과 시간 조율 후 요양보호사와 면접을 진행하고 서비스를 시작하였습니다. 우리 어르신과 선생님이 마치 운명처럼 잘 맞는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두 분이 함께하는 모습이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배우자분과 따님은 연신 감사의 인사를 전하셨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아버님께서 따님의 손을 꼭 붙잡으시며 조심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고… 고… 고마… 워.” 말씀이 많이 어눌하셨지만, 누가 보아도 따님께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모두의 눈시울이 붉어질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습니다. 4. 가족의 감사와 신뢰 차량목욕을 지켜보며 저는 ‘돌봄의 본질’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어르신에게 목욕은 단순한 청결 관리가 아니라, 존엄을 지켜주는 시간이었고, 살아 있음의 기쁨을 되찾는 순간이었습니다. 따뜻한 물 한 대야가 씻겨준 건 몸의 먼지뿐 아니라, 마음에 쌓여 있던 무력감과 외로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돌봄은 주는 사람이 받는 것보다 더 큰 선물을 얻는다는 사실을. 처음에는 어르신께 도움을 드린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은 어르신이 저에게 ‘일의 가치’와 ‘삶의 의미’를 다시 일깨워 주셨습니다. 5. 맺으며 돌봄의 길은 언제나 쉽지만은 않습니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기도 하고, 작은 성과를 얻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차량목욕을 마치고 개운한 얼굴로 활짝 웃으시는 어르신을 보면, 모든 수고가 단숨에 사라집니다. 저는 앞으로도 다짐합니다. 단순한 서비스 제공자가 아니라, 어르신들의 존엄과 행복을 지켜드리는 ‘따뜻한 동반자’가 되겠다고. 따뜻한 물 한 대야 속에서, 저는 배웠습니다. 돌봄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 흐르는 가장 따뜻한 연결이라는 것을요.
2023년 8월 케어링 호남센터는 비대면 방식의 통합요양으로 운영을 시작하였습니다. 비대면 운영 체계는 낯선 방식이었고, 어르신의 건강 상태와 가정 환경을 어떻게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지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상담, 계약, 욕구사정 등 모든 필수 절차가 매뉴얼에 따라 통화로 이루어지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수화기 너머로 건네는 말들이 상담원의 형식적인 응답처럼 들리기 시작했고, 저 또한 어르신과 보호자분들을 무미건조하게 대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필요한 서류들은 빠짐없이 채워졌고 업무 처리는 분명 효율적이었지만, 그 안에서 소통의 한계는 분명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던 중 2025년 1월, 건강보험공단 지침이 변경되면서 비대면에서 대면으로 전환하게 되어 한 달에 한 번 어르신 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비대면 방식을 선호하시던 어르신과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이 많았기에, 첫 방문 안내 전화를 드렸을 때 불만과 반감의 목소리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비대면이라 편하고 좋았는데, 굳이 왜 바꾸느냐”는 말씀과 함께 약속을 미루거나 일정을 번복하시는 일도 많았습니다. 방문에 대한 부담과 불편함을 호소하시는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변화의 첫걸음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방문이 이어지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전화로는 화가 나 계셨던 어르신과 보호자분들이 실제로는 현관문을 열어 따뜻하게 맞아 주시기 시작하였고, “직접 보니 마음이 놓인다”, “지난번 알려준 방법이 도움이 됐다”는 말씀을 건네 주셨습니다. 통화로는 놓치기 쉬운 어르신의 상태 변화들을 눈으로 확인하며 필요한 지원이나 케어 방법들을 바로 제안 드릴 수 있었습니다. 어르신을 더 잘 돌보기 위한 작은 조언과 공감들이 신뢰를 쌓게 되었습니다. 통화로는 되풀이되던 오해와 갈등이 현장에서의 짧은 대화로 이야기가 해소되며 무엇보다 “우리 집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주는 사람이 생겨 너무 고맙다”는 어르신과 보호자 분들의 감사도 받게 되었습니다. 신뢰감이 쌓이면서, 요양보호사님 먼저 방문일정을 여쭤봐 주시고 조용히 음료, 과일을 내어주시면서 사회복지사를 기다려 주시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비대면의 장점이었던 신속함과 효율성은 유지하되, 대면의 장점인 신뢰와 관계 속에서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대면 방문을 통해 알게 된 것은 가족으로서, 또 요양보호사로서 24시간 돌봄을 이어 가는 외로움과 힘듦도 알게 되었습니다. 생업도 포기하고 돌봄을 이어 가며 어렵게 생활하는 요양보호사들도 계셨습니다. 늘 수면 부족을 호소하셨고, 다른 가족들과의 돌봄 분담에서 생기는 갈등으로 고통받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요양보호사님들은 “내가 부족해서 어르신이 더 힘들어하시는 건 아닐까” 하는 자책과, 예고 없이 변하는 어르신의 컨디션 앞에서 불안하고 흔들리는 마음을 털어놓으셨습니다. 어르신 뿐만 아니라 요양보호사님도 위로받고 공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돌봄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집니다. 서로를 향한 환대, 사소한 배려와 솔직함, 존중하는 마음들이 모여 돌봄이 이루어진다고 생각됩니다. 대면으로 오기까지의 어려움이 많았지만 ‘자세히보아야 예쁘다. 오래보아야 사랑스럽다.’는 말처럼 대면으로 전환되니 사회복지사, 어르신, 요양보호사의 관계 속에서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케어링과 함께하며 의지가 된다는 말씀과 아직은 저희를 미뤄내는 어르신도 계시지만 언제나 웃음으로 마주해주시는 우리 어르신, 요양보호사님들을 보면서 저희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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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서 저는 케어링 다솜센터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사회복지관에서 쌓아온 경험을 뒤로하고, '장기요양'이라는 새로운 세계에서의 첫 발걸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이내 현실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저를 포함해 경력이 2년도 채 되지 않는 10명의 사회복지사들은 하루에도 50명 이상의 어르신을 찾아뵙고, 그분들의 삶을 보살피는 일과 함께 요양보호사와 보호자들의 다양한 고충을 듣고 해결해야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다솜센터는 마치 거친 풍랑을 만난 배와 같았습니다. 경험 많은 사회복지사들의 이탈, 잦은 센터장 및 부센터장 교체, 그리고 급작스러운 비대면에서 대면으로의 전환까지. 짧은 시간 안에 너무나 많은 변화가 몰아닥쳤습니다. 저는 센터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꼈습니다. '과연 이 난관을 헤쳐나갈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하고, 좌절하는 순간도 많았습니다. 센터원들의 믿음을 얻지 못했고, 함께보다는 개인이 우선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성과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사회복지관과는 다른 장기요양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제가 해야 할 역할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모르는 것이 있다면 묻고, 궁금한 것이 있다면 직접 찾아 나섰습니다. 다른 센터의 베테랑 센터장님, 부센터장님께 조언을 구하고, 박광준 본부장님과의 대화를 통해 케어링과 장기요양에 대한 깊은 이해를 얻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만의 멘토를 찾아 끊임없이 배우고 또 배웠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름이 찾아오자 놀라운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굳게 닫혔던 마음의 문을 열고, 센터원들이 저에게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제 답변을 신뢰하고, 자신의 업무에 적용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한두 명이던 소통이 점차 늘어나고, 필요한 정보는 서로 공유하는 '우리'가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개인이 아닌 단체로서, 우리는 서로에게 믿음과 동료애를 쌓아가며 함께 가을을 맞이했습니다. 센터원들이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준 덕분에, 우리는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있습니다. 저는 이들이 단순히 방문을 하는 사회복지사가 아닌, 사회복지의 본질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진정한 전문가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 또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노력할 것입니다. 이제 겨울이 지나고 "꽃 피는 봄이 오면", 다솜센터는 모두가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따스하고 행복한 공간이 될 것입니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굳건히 피어난 작은 변화들이 모여, 다솜센터의 밝은 미래를 위한 굳건한 토대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가을의 이야기는, 오늘도 한 걸음씩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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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불편해도, 나이 들어도, 누구나 아름다울 권리가 있습니다. 어르신의 존엄한 삶을 지키는 따뜻한 손길, 미용봉사가 함께 합니다” ○ 활동 개요 - 본 기관을 이용하고 있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미용봉사 활동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이 활동은 어르신들의 신체적 제약으로 인한 외부 미용 서비스 이용의 어려움을 해소하고 개인의 위생 및 외모 관리를 지원함으로써 삶의 질 향상과 정서적 안정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 활동 목적 - 어르신의 위생 및 외모 관리 지원 - 자존감 회복과 정서적 안정 도모 - 가족 및 요양보호사의 돌봄 부담 완화 ○ 활동 내용 - 대상 : 김금진 어르신 외 19명 - 장소 : 수급자 가정 - 기간 : 2개월 주기 및 4개월 주기 - 내용 : 주숙현 사회복지사와 김미진 요양보호사(전직 미용사) 2인 1조로 커트 및 염색 서비스 ○ 활동 효과 - 미용 서비스를 받은 후 기분이 좋아졌다, 동네 사람을 만나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임 - 가족 및 보호자로부터 정기적인 방문 미용 서비스에 만족감 높음 - 정서적 안정감과 자존감 고취 ○ 향후 계획 - 찾아가는 미용봉사는 단순한 외모 관리 그 이상으로 어르신의 삶을 존중하고 존엄을 지키는 소중한 돌봄의 실천입니다 앞으로도 네일 케어 서비스를 추가로 어르신들이 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일상을 누릴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실천을 이어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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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만금 개척자 1호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던 어르신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옵니다. 그분과의 만남은 약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자녀들은 모두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고, 어르신은 혼자 오래된 주택에 머물고 계셨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 치매 약은 복용하지 않으셨지만, 점점 인지력이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어제 나눈 이야기를 오늘 또 하시고, 다음 날에도 똑같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처음 듣는 듯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들어드렸습니다. 어르신은 마치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신나게 말씀을 이어가셨습니다. “내가 예전에 새만금 개척자 1호야. 새만금박물관에 가면 내 사진이 걸려 있다더라. 한번 가보고 싶네.” 어르신은 벽에 걸린 낡은 흑백사진을 가리키며 눈을 반짝이셨습니다. “그래요, 어르신. 시간 되면 꼭 모시고 갈게요.” 그렇게 약속했지만, 센터의 일은 늘 바빴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과 어르신들의 일정을 관리하고 상담을 해야 하니 반나절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한 채 마음속에만 남게 되었습니다. 어르신은 늘 새만금 이야기를 즐겨 하셨습니다. 그 시절, 뙤약볕 아래서 흙먼지를 뒤집어쓰던 자신의 젊은 날을 자랑처럼 들려주셨습니다. 그 무용담을 들을 때마다 저는 ‘이분이야말로 새만금의 살아 있는 역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이야기를 한 번이라도 더 들어드릴걸, 그리고 그렇게 보고 싶어 하시던 박물관의 사진을 꼭 보여드릴걸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어느 날, 그 어르신은 갑자기 쓰러지셨습니다. 그날 아침 8시 2분전, 평소처럼 출근해 컴퓨터를 켜려던 찰나 다급한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센터장님! 어르신이 쓰러져 계세요. 피를 보셨어요. 쇼파는 물론이고 이 방 저 방 온 집안이 난리예요!” 핸드폰 너머의 요양보호사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습니다.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침착하자’고 스스로 다독이며 119에 신고하고 보호자에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제가 오후에 갈 수 있으니 되도록 원광대학병원으로 후송 부탁드릴께요.” 얼마 후 도착한 응급차에 어르신은 실려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제가 도착했을 때 요양보호사님은 온몸에 힘이 빠져 있었습니다. “어르신 손톱에도 피가 묻어서 닦아드렸어요. 온 집안이 난리라 119 오시기 전에 물수건으로 닦고 옷도 갈아입혀드렸어요. 어떻게 해요, 센터장님…” 그 말에 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그 이른 아침, 어르신의 곁을 지켜준 요양보호사님의 헌신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응급실에서 검사를 마친 결과는 예상대로 위출혈이었습니다. 긴급 수혈과 내시경 시술이 진행되었고, 다행히 상태는 빠르게 호전되었습니다. 저녁 무렵 도착한 보호자는 “신속하고 세심하게 대응해주셔서 감사하다”며 거듭 인사했습니다. 그제야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의 일은 정말 알 수 없구나.’ 사실 어르신의 요양시간은 원래 오후였는데, 이틀 전부터 오전으로 변경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대로 오후였더라면, 어르신은 출혈로 세상을 떠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 순간, “시간을 바꿔드린 게 한 생명을 살렸구나” 싶어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하지만 기적 같은 회복도 오래가진 못했습니다. 어르신은 병원에서 퇴원하신 뒤 거동이 어려워 요양원으로 옮기셨고, 몇 달 후 부고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한동안 말을 잃었습니다. 치매가 조금 있었을 뿐, 아직 삶의 온기를 간직한 분이셨기에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장례식장에 가니, 영정사진 속 어르신은 환하게 웃고 계셨습니다. “이제 아프지 말고, 외롭지도 말고 좋은 곳에서 편히 쉬세요.” 그렇게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며칠 뒤, 그날 어르신을 돌보셨던 요양보호사님이 사무실에 들르셨습니다. 차 한 잔을 나누며 저는 말했습니다. “어르신과 새만금박물관에 꼭 같이 가자던 약속을 못 지킨 게 마음에 걸려요.” 그러자 선생님은 미소 지으며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아프지 않으시잖아요. 하늘에서 자유롭게 새만금도, 박물관도 다니고 계실 거예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속에 오래 남았던 미안함이 조금은 녹아내렸습니다. 비록 함께 박물관에 가지는 못했지만, 어르신은 아마도 지금 하늘 위에서 그 넓은 새만금을 바라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케어링 김제센터의 책임자로 일하며 많은 분들의 삶과 마주합니다. 때로는 그 무게에 마음이 무겁지만, 매일 누군가의 하루를 지켜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저를 다시 일어서게 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 순간에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제 인생의 가장 큰 보람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영남센터에서 24.01.02일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근무하고 있는 김연춘 복지사입니다. 영남센터에는 센터장님과 두 분의 방문요양 팀장님 그리고 11분의 사회복지사님들이 있습니다. 가산방문을 다니다 보니 마주치는 시간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여름 동안은 더운 날씨에 방문을 다니느라 지쳐 있고 가끔 방문 약속을 잡아놓으면 일방적으로 취소하고 다른 방문 일자나 시간을 배려하지 않고 와달라고 하는 경우, 방문을 오지 않았으면 하는 분들, 법정의무교육을 안내해 드리면 왜 이런 걸 들어야 하는지 복지사가 다 들어주는 게 복지사의 일 아니냐는 말들로 조금은 지쳐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긴 한숨으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마음과 센터장님, 팀장님, 팀원들에게 이야기하며 마음을 다스릴 때가 있습니다. 이쯤에서 영남센터의 선생님들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김주영 센터장님은 젊으신데도 팀원을 생각하고 너그러우시며 센터를 이끌어가시는 카리스마가 대단하신 분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이성적인 넓은 마음으로 큰일도 별일 아니게 따뜻한 설명으로 잘 해결해 주시어 언제나 든든하고 존경스러운 분입니다. 김현아 방문요양 팀장님은 영남센터의 유쾌하고 현명하신 개그우먼입니다. 업무수행시 궁금한 점이나 사람을 대할 때 어려움이나 고민이 있을 때 잘 들어주시고 대처법에 대한 대안을 제시해 주시어 업무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며 다양한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말씀해 주시어 현아님 옆에 있으면 늘 웃음이 멈추질 않습니다. 박준정 방문요양 팀장님은 애교와 귀여움을 잔뜩 머금은 센터의 비타민 같은 존재입니다. 영남센터에 오래 근무하셨고 다양한 노하우로 팀원들의 업무를 잘 도와주시고 팀원 한분 한분에게 매일 매일 컨디션 체크와 어려움이 있는지 살뜰하게 챙겨봐 줍니다. 최다희 사회복지사님은 영남센터 개원멤버입니다. 비대면시 120~160명대의 수급자를 담당하셨고 지금까지 한결같이 감정조절 능력이 뛰어나며 상대방의 감정을 잘 이해하며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업무의 시행착오 또한 오랜 근무 경력으로 업무 처리능력이 우수합니다. 전미진 사회복지사님은 세심하고 따뜻한 분입니다. 근무 경력이 있으시며 작은 배려와 진심 어린 행동으로 주변을 밝게 만드는 존재로 늘 반갑게 맞이해 주셔서 잠시 업무로 힘들 때도 미진님의 미소를 보면 함박웃음이 지어지며 힘이 납니다. 말과 행동에 진정성과 꼼꼼함이 있어 업무 시 배울 점이 많으신 분입니다. 김혜진 사회복지사님은 늘 평온하고 한결같은 태도를 유지하는 분입니다. 어떤 말을 하면 ‘정말요?, 왜 그런거에요?’라는 질문으로 대화를 잘 이끌어나가다 보니 보호자분과 어르신들의 마음을 열어 드리고 대화함으로써 마음의 공감과 안정적으로 이끌며 조용한 힘으로 편안함과 신뢰를 쌓아가는 분입니다. 김민영 사회복지사님은 따듯한 미소로 잘 웃으며 긍정적인 분으로 사람 자체로 주변 사람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며 관계를 따뜻하게 해 주시는 분입니다. 업무 시 보호자분들과 통화를 할 때를 보면 친절하고 공감 가는 설명과 함께 가끔 ‘헤헤~’하며 웃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보면 옆에 있는 저 또한 웃음이 지어지며 편안함이 느껴집니다. 최예지 사회복지사님은 어떠한 위기 상황 속에서도 이성을 잃지 않고 침착하고 낙관적이며 상대방의 마음을 공감하고 잘 이해해 주는 분입니다. 업무 상황을 잘 파악하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에게 동기부여를 주고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 힘이 나게 합니다. 강한별 사회복지사님은 예의 바르고 애교 넘치는 분으로 밝은 인사성과 싹싹함, 책임감과 따뜻한 태도를 갖춘 분입니다. 예전에 무언가를 물어봤을 때 ‘네?’라고 한마디 했을 뿐인데 너무 애교스러워서 제가 반할뻔한 적도 있습니다. 늘 솔직하고 명랑한 분으로 주변을 밝게 비춰주십니다. 전성미 사회복지사님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며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하시어 옆에 있으면 믿음직하고 든든한 지원군 같은 분입니다. 업무 시 꼼꼼하고 성실하게 일하시며 항상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시는 따뜻한 마음을 지니신 분으로 옆에 있으면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절로 생겨납니다. 이자민 사회복지사분은 입사 두 달이 지난 분으로 귀엽고 앙증맞은 말투와 표정으로 차가운 얼음도 녹일 것 같은 사랑스러운 분입니다. 업무상 통화할 때 옆에서 들으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상대방을 공감하고 이해하는 개방적인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업무도 금방 습득하여 척척 잘 해결해 나갑니다. 장재혁 사회복지사님과 이진호 사회복지사님은 입사 1개월이 지난 케어링의 신입 복지사님입니다. 장재혁사회복지사님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숨기지 않고 솔직하고 진실하며 다정다감한 분입니다. 수급자댁에 방문했을 때 보호자분께서 타센터로 가실 생각이셨으나 복지사님과 대화와 상담으로 재혁님의 신뢰성을 확인하시고 다시 케어링과 계속 이어가겠다고 하실 정도로 부드럽고 단단한 내면을 가졌으며 세심함과 상대방과의 대화시 경청으로 안정감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이진호 사회복지사님은 잘 웃으시고 상대방의 말을 잘 경청하며 세심한 관찰력으로 대화시 공감과 위로를 해 주며 주변 사람을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시는 분입니다. 어른들께 예의 있고 배려있게 이해해 드리고 대해주시니 예민하시거나 어려운 수급자나 보호자분들도 상담을 잘 해주시고 어려운 일도 해결하고 도움을 주어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합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평균나이를 높이는 제가 있습니다. 나이가 있다보니 실수할 때도 있고 업무지시를 잊을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팀원들은 조용히 다가와 살짝 알려주고 갑니다. 매일 아침 젊은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잘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제 책상이 있다는게 얼마나 행복한지 모릅니다. 오늘도 저는 출근하면서 팀원들께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케어링 영남센터라는 땅에 주영 센터장님이 뿌리를 내리고 현아 팀장님의 든든한 기둥에 준정 팀장님이 잎을 키우고 우리들이라는 열매가 맺혀있습니다. 팀원 한 분 한 분 소중하며 업무이든 아니든 모든 일들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적극적으로 나와서 도와줍니다. 케어링 영남센터가 잘 이끌어지는 비결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부족함도 꾸준히 보완해 주는 의사소통이 잘 되는 인성이 좋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맛있는 열매를 맺어서 맛있게 일할 수 있도록 팀원 모든 분들 잘 부탁드립니다~♡
처음 김○○ 어르신 댁을 방문했을 때, 집 안엔 묵묵한 시간이 오래 머물러 있었습니다. 어르신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후 6년째 재활 중이었고, 몸 한쪽이 불편해 일상생활의 작은 동작 하나에도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 옆에서 보호자분은 “좋다는 약은 다 구해서 드셔 보셨어요. 재활병원도 꾸준히 다녔는데, 이제는 병원까지 가는 길이 너무 힘들어요.” 하며 조용히 웃으셨습니다. 그 웃음 속엔 지친 마음이 묻어 있었습니다. 어르신의 건강이 점차 악화되자 부부는 수성구에서 동구로 이사를 결심했습니다. 재활병원 대신 가까운 체육공원에서 운동을 계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이사 후에도 아내 혼자서 재활과 일상 돌봄을 모두 감당하기에는 여전히 벅찼습니다. 그때 저희 케어링 대구 서구점의 방문요양 서비스가 시작되었습니다. 방문요양보호사 선생님은 단순히 일과표에 따라 도움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어르신의 하루를 함께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다가가셨습니다. 매일 아침 “오늘은 햇살이 참 좋네요, 공원 나가서 조금 걸어볼까요?”라며 어르신을 격려하고, 스트레칭과 관절운동을 꾸준히 이어가셨습니다. 손끝으로 천천히 다리를 주무르며 굳은 근육을 풀어드릴 때면 어르신은 “오늘은 좀 덜 당기네.” 하며 미소를 지으셨습니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보호자분도 점차 밝은 표정을 되찾으셨습니다. “요즘은 예전보다 훨씬 나아졌어요. 밤에 다리 경련이 와도 찜질해주면 괜찮아지네요.” 그 한마디에 요양보호사 선생님도, 사회복지사도 서로 눈을 마주보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몸의 회복은 어느새 마음의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전엔 하루 대부분을 침묵 속에 보내시던 어르신께서, 이제는 요양보호사에게 먼저 농담을 건네기도 하셨습니다. “이제는 내가 운동하자고 먼저 말할 때도 있어요.” 그 말 한마디가, 이 관계의 변화를 보여주는 가장 큰 증거였습니다. 돌아보면, 이 변화는 단지 신체기능의 호전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곁에서 함께 걸어주고, 마음으로 손을 내밀었기 때문입니다. 돌봄은 ‘서비스’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서로의 마음을 두드리는 과정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저희 케어링 서구점에서는 어르신의 삶이 단순히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하루’로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현장을 지킵니다. 단순한 지원을 넘어,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회복과 위로. 그것이 우리가 ‘돌봄’을 선택한 이유이자, 다시 내일을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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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OO 어르신은 처음 방문요양 상담 하셨을 때 치매로 인한 망상 증상이 심하셨습니다.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하고 가족들 조차 믿지 못하며 종종 혼잣말을 하시거나 누군가 자신의 돈과 물건들을 훔쳐간다는 불안 속에 지내셨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들은 그런 어르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매일 정성을 다해 어르신 곁을 지켰습니다.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전OO 어르신과 눈을 맞추며 따뜻한 말 한마디, 불안해 하지 않도록 꾸준히 이야기해드리는 등 작은 행동들을 꾸준히 실천했습니다. 어르신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드리고, 불안해 하실 때는 함께 어르신이 좋아하는 강아지를 함께 돌보며 마음을 진정시켜드렸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자, 어르신의 표정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습니다. 경계하던 눈빛이 부드러워지고, 입가에 미소가 띄기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망상 증세가 점차 줄어들면서 마음이 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이 경험은 센터 직원들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진심을 담은 돌봄이 사람의 마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그리고 그 변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금 깨닫게 해준 시간이었습니다.
매일 비슷하게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도, 우리 센터는 언제나 작은 쉼터 같은 곳이 되어 줍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먼저 들려오는 따뜻한 인사, 그리고 함께 웃으며 나누는 이야기들이 하루의 무게를 조금은 가볍게 만들어 줍니다. 가끔은 작은 관심 하나가, 또 짧은 격려 한마디가 누군가의 마음을 단단하게 지켜 주기도 합니다 서로 살아온 길은 다르지만, 이곳에 모이면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 있음의 힘’을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의 하루는 어르신의 집 문을 두드리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 문 뒤에는 언제나 기다림이 있습니다. 몸이 불편하거나 혼자 계신 어르신들에게 우리는 단순한 사회복지사가 아니라, 잠시나마 이야기를 나누는 친구가 되고, 가족처럼 곁을 지켜 드리기도 합니다. 어느 날, 한 어르신이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와 주셔서 집이 환해지는 것 같아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방문요양이 단순히 도움을 드리는 일이 아니라, 마음을 돌보고 외로움을 덜어 드리는 일이라는 걸 깊이 깨달았습니다. 어르신들의 지난 삶 이야기를 함께 웃으며 들을 때도 있고, 힘들었던 기억을 나누며 조용히 손을 잡아 드릴 때도 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사실은 우리가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작은 친절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진심 어린 관심이 어떻게 누군가의 하루를 환하게 바꿀 수 있는지를요 그래서 우리 센터는 단순한 공간이 아닙니다. 서로의 마음을 두드리고 온기를 나누는 집이자,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는 따뜻한 다리입니다. 어르신들의 하루에 웃음을 더하고, 외로운 마음에 작은 등불이 되어 드리는 곳. 그 속에서 우리도 함께 성장하며,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갑니다. 돌아보면, 이 길을 선택한 것이 우리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결정 중 하나였음을 알게 됩니다. 오늘도 어르신의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울림과 빛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드립니다. 우리 센터는 그렇게 매일,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누군가의 삶을 밝혀 주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몸보다 마음이 더 깊게 다친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센터의 김O현 어르신도 그러셨습니다. 홀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며 사람을 멀리하고, 누군가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대면조차 힘들어 병원에도 가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닥에 누워 외로운 시간을 보내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요양보호사 박O순 선생님과 사회복지사 황O영 선생님은 그 문 앞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어주지 않아도 매일 같이 방문을 하고, 문을 열어주는 날이면 조심스레 안부를 전하였고, ‘’오늘은 조금 괜찮으세요?‘’, ‘’날이 많이 추워요. 따뜻하게 계세요.‘’ 라며 그렇게 진심을 담아 마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시간이 쌓이고 계절이 바뀌던 어느 날, 닫혀 있던 문이 천천히 열렸고, 그 순간 어르신의 마음에도 따뜻한 바람이 스며드는 듯했습니다. 처음 들어간 집은 오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습니다. 먼지와 곰팡이 그리고 각종 묵은 때가 가득한 방, 물이 나오지 않는 화장실... 누구라도 주저앉을 만한 환경이었지만 요양보호사 선생님은 두 팔을 걷어 붙히셨습니다. 청소와 정리를 도우며, 어르신이 조금이라도 편히 생활할 수 있도록 함께 해결해 나갔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집이 깨끗해지고 무엇보다 어르신의 마음이 따뜻하게 피어났습니다. 이제 어르신은 우리가 방문하는 날이면 문 앞에서 맞이하시고 집을 나설 때는 ‘’다음에는 언제 와요?‘’라고 물어보셨습니다. 그 변화의 시작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진심 어린 마음’이었습니다. 닫힌 문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그 마음을 믿고 기다려준 덕분에 결국 큰 변화를 이끌어 내었습니다. 케어링 부산점이 전하는 돌봄은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다시 만나는 따뜻한 희망의 손길임을 잊지 않겠습니다.
각자의 삶이 바빠 일적으로 밖에 얼굴을 볼 수 없었는데, 이번에 영등포구청에서 좋은 프로그램을 진행한다고 하여 이를 빌미 삼아 영등포점 식구들과 함께 토요일 나들이를 떠나게 되었다. 또한 3분기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기 위해 회식을 잡았고, 우리는 샤브올데이로 맛있는 여정을 떠나기로 하였다. 우리의 이야기를 지금 시작해보려고 한다. EP1. 그날의 추억 쌓기 2주 전 한적한 어느 오전, 조용하던 공간에 센터장님의 목소리가 퍼졌다. "쌤들쌤들, 여기로 잠깐 와봐요~" 우리는 뚜벅뚜벅 센터장님 자리로 갔다. "쌤들, 이 날 시간 되세요?" 센터장님의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영등포구 장기요양 종사자 힐링 역량 강화 교육] 09월 27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법정 의무교육 중 하나인 자살예방교육도 포함되어 있고, 수제비누 만들기도 하는데 어때요?" 민주선생님이 먼저 답을 하였다. "저는 그날 시간 괜찮아요." 이어 태현선생님도 "저도 가능합니다." 은경선생님 역시 "저도 문제없어요."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센터장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좋아요~ 그럼 전원 참석하는 걸로 할게요!" "아, 그리고 끝나고 회식 콜?" 순간 모두의 눈이 반짝였다. "좋아요~~!!" 사무실엔 작은 기대와 웃음이 퍼졌다. 그날의 교육은, 단순한 일정 이상의 의미로 다가올 것 같았다. EP2. 그날의 추억쌓기 1주 전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울려 퍼지는 고요한 사무실. 그 정적을 깨뜨린 건, 다름 아닌 센터장님의 한마디였다. "쌤들, 회식 장소 어디로 할까요?" 지친 일상 속, 마치 한줄기 빛처럼 스며든 그 말에 우리 모두의 귀가 쫑긋, 눈빛이 반짝였다. "음………" 서로 말은 없었지만, 마음만은 하나.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가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회식 장소를 찾는 손길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은경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샤브올데이 어떠세요?" 그 말에 민주 선생님의 눈이 커졌다. "헐, 저 거기 너무 가보고 싶었는데..!!" 태현 선생님도 바로 반응했다. "오오, 저도 찬성이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들떴다. 좋다, 괜찮다, 가자— 말은 다 달라도 뜻은 같았다. "그럼, 샤브올데이로 정할게요~" 그렇게 단 몇십 분 만에 회식 장소가 정해졌다. 속전속결. 이렇게 마음이 척척 맞다니, 이쯤 되면 팀워크도 예술이다. EP3. 그날의 추억쌓기 하루 전 "쌤들, 내일 까먹으면 안 돼요~!" 센터장님의 당부 섞인 목소리에 우리는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넹~~!" 이런 기회, 흔치 않다. 절대 잊어버릴 수 없다. 게다가 귀중한 토요일에 만나는 일정이라니— 더더욱 각별했다. 그날 오후,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업무를 하나씩, 차근차근 마무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허투루 움직이지 않았다. 일찍 끝내야 내일을 가볍게 맞이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망설임 없이 가방을 챙겼다. "오늘은 칼퇴입니다!" 내일을 위한 작은 준비. 그건 바로 완벽한 칼퇴였다. EP4. 그날의 추억쌓기 당일 센터 앞으로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했다.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발걸음엔 은근한 설렘이 묻어났다. 우리는 각자 음료 한 잔씩을 손에 들고, 가벼운 웃음과 함께 영등포구청으로 향했다. 터벅터벅— 입구에 다다르자,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처럼 교육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였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리는 집합장소인 5층 강당에 도착했다. 명단 확인을 마친 뒤,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 어색함과 설렘이 뒤섞인 공기. 우리는 조용히 자살예방교육에 집중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히, 진지하게—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이 흘렀다.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천연 수제비누 만들기 시간이 찾아왔다. "아~ 나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민주민주는 해봤어요?" "아뇨ㅎㅎ 저도 처음이에요." "은경쌤이랑 태현쌤은요?" "저도 처음이예요." "저도 어릴 때 한 것 같긴 한데, 기억이 잘 안 나요." 모두가 처음이었지만— 그게 무슨 문제일까. 우리는 늘 함께였고, 늘 서로를 도왔으니깐. EP5. 그날의 추억쌓기 비누 만들기 비누 만들기에 필요한 재료들이 하나둘씩 배분되었다. 사람들은 비누 베이스를 녹이기 위해 전자레인지 앞으로 조심스레 모여들기 시작했다. 우리는 뒷분단.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부터 먼저 하도록, 묵묵히 기다렸다.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하지만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자, 비누는 인당 두 개씩 만들어주세요~ 시간 여유 있으신 분들은 한 개씩 더 만드셔도 됩니다~" 강사님의 안내가 들려왔지만, 우리에게는 두 개조차 버거운 상황이었다. 기다림이 너무 길었던 탓일까, 비누를 만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때, 센터장님이 말했다. "쌤들, 우리 사무실에도 전자레인지 있잖아요. 끝나고 거기서 마저 만들래요?" 오오…! 역시 센터장님. "좋아요!!" 우리는 남은 재료들을 챙겨 들고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 우리의 사무실로 향했다. 불타는 열정과 조용한 끈기를 안고 미처 완성하지 못했던 비누를 하나씩, 다시 만들기 시작했다. "완성!" 찰칵, 찰칵. 비누 사진을 남기는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모양이 조금 찌그러졌을지라도, 색이 바랬을지라도, 마음에 쏙 들지 않았더라도—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함께했던 시간, 서로 도우며 웃었던 그 순간들이었다. 결국, 가장 예쁜 건 비누가 아니라 우리의 추억이었다. EP6. 그날의 추억쌓기 회식 와~~~! 마침내 오늘의 피날레를 장식할 '샤브올데이' 앞으로 도착했다. 역시 소문난 맛집답게 이미 웨이팅이 길게 걸려 있었다. 우리는 이름을 올려두고, 근처 다이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 띠링! 카톡 알림이 울렸다. '웨이팅 입장 바랍니다.' 순간, 머뭇거릴 틈도 없이 우리는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발걸음을 되돌려 음식점으로 향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필요한 재료들을 하나둘 가져오기 시작했다. 샤브샤브 육수, 각종 채소, 고기, 면, 소스까지— 정말 이 순간만큼은,모두가 한 팀, 하나의 마음이었다. 싱그러운 햇살이 창가로 스며들고, 우리의 테이블엔 하하호호 웃음소리와 따뜻한 대화가 피어올랐다. 바쁜 일상 속, 잠시나마 힘들었던 순간들을 잊고 우리만의 또 하나의 추억을 쌓아가는 시간. 정말… 보람찬 하루였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엔 영등포점이라는 이름 아래 우리가 함께한 특별한 하루가 조용히, 따뜻하게 남아 있었다. 이곳의 가장 큰 장점이 뭘까?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고, 누구 하나 소외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고, 아껴주며 불평이 있다면 솔직하게 나누고, 함께 해결하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게 바로 영등포점의 진짜 힘 아닐까. 오늘 우리는 또 하나의 새로운 에피소드를 완성했다. 앞으로 어떤 재미난 이야기들이 우리의 일상 위에 차곡차곡 쌓여갈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역시, 영등포점의 보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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